[기자수첩]정치권의 과학계 흔들기는 '공멸'

과기계 기관장 잇따른 사퇴···물갈이 설 제기
연구 현장 "더 이상 안된다" 스스로 변화 움직임 확산
올해들어 과학계 기관장 사퇴가 잇따르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 물갈이가 속도를 내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이번 정부도 기존 정부와 다를 게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서상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 소장은 선박해양플랜트연이 해양과기원 부설기관으로 승격되던 2014년 첫 소장으로 취임한데 이어 지난해 1월 연임에 성공했으니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다. 장규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은 임기를 8개월여 남기고 사퇴했다.

3월말과 4월초에는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과 임기철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신중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이 2년여의 임기를 앞둔 상태에서 사임을 표했다.

이들은 전 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사퇴 전 강도 높은 감사를 받았다.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인사로부터 직접적인 사퇴 종용도 지속됐던 것으로 확인 된 바 있다.

물론 감사를 통해 잘못이 확연히 드러났다면 사퇴는 당연하다고 본다. 일부는 인사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이들의 사퇴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기관장이 의혹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오점이다. '행정적인 절차를 잘 몰라서'라는 이유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관장은 이런 점에서 투명해야 한다는 교훈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과학계 기관장 줄사퇴는 투서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감사에 들어가고 꼬투리 잡기 식으로 사퇴를 종용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물러난 기관장 중에는 연구자 출신도 있다. 이들은 오랜기간 몸담아 왔던 기관에 누가 되거나 동료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서둘러 사퇴를 결정한 이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석인 기관장 자리에는 현 정부 코드에 맞는 인사들이 벌써부터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번 정부 인사도 정권이 바뀔때마다 관행처럼 반복됐던 과학계 기관장 물갈이와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우리는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의 폐해를 너무나 여러번 경험했다. 억대의 연봉을 받으면서 기관의 미션 실현보다 정치권 줄대기에 급급했던 그들로 인해 연구환경은 피폐해졌다. 

또 정치권이 과학기술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과기철학과 긴 호흡의 로드맵은 사라지고 단기 성과 위주의 압박으로 연구자들은 갈팡질팡 했던게 사실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암울한 시간이 반복되면서 연구 현장에서 스스로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 더 이상 이런 폐해가 지속되면 과기계는 물론 국가마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며 현장에서의 변화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이번 정부는 국민이 세운 정부다. 이전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의미다. 적폐는 청산 대상이지만 이데올로기적 구분으로 '내 사람 심기' 인사는 또 다른 적폐를 양산한다. 근절해야 할 악습이다. 이런 관행은 과학계의 퇴보, 국력 약화를 불러 올 뿐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에 기반 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변국들은 미래를 향해 과학기술에 집중 투자하며 속도를 더하고 있다. 더 이상 내부 다툼으로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과학계는 물론 정치권도 국민을 위한 국가라는 분명한 명제 아래 함께 움직여야 할 때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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